[김영조의 우리문화편지]
시대별 달라진 수제비의 위상
전 대통령 김영삼은 청와대에서 수제비를 먹는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검소하게 보이기 원했나 봅니다.
수제비는 팥수제비, 애호박수제비, 다슬기수제비, 고구마수제비, 감자수제비, 낙지수제비, 고추장수제비, 해물수제비 등 그 종류가 다양한 만큼이나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옛날엔 궁궐이나 양반집 잔칫상에서 볼 수 있었던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서긍이 쓴《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에는 밀이 적기 때문에 중국에서 수입한다. 그러나 밀가루값이 매우 비싸서 혼인이나 잔치 같은 날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우리 겨레의 주식은 쌀과 보리였기에 밀의 재배는 아주 적었고 그래서 값이 비싸며 귀해 일반 백성은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일제강점기에도 수제비는 귀했습니다.
《개벽》 제72호 1926년 8월 1일 기사에는 ‘우리가 鷄林莊에서 고생하던 일을 생각해보자. 하로에 밀가루 수제비 한번을 변변히 못 먹어도 우리 깜녕에는 어느 정도까지는 자유롭고 활발하게 놀엇다! 豪語壯談으로 萬丈의 氣陷을 토하야 山河를 들어마시고 우주를 때러부실드키 放恣豪蕩하게 놀지 안엇든가?’라는 글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때의 수제비는 《고려도경》의 ‘귀한 수제비’이기보다는 쌀, 보리를 대신하는 음식으로 느껴집니다. 지금은 다시 ‘별미’라는 인식이 강해졌지만 말입니다.
시대별 수제비에 대한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 퍽 흥미롭습니다. 애호박 철에 애호박을 송송 썰어 넣은 수제비 한 그릇은 여름철 별미 중에 별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