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에 가득 찬 초여름 햇살이 맑은 지난 어린이날, 필자는 어린이날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철도박물관으로 나섰다. 2004년 이후 꾸준하게 이어져 왔던 의왕어린이축제가 입소문을 타서인지 아니면 연휴를 낀 토요일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느 해 보다도 많은 방문객이 축제를 찾아주었다. 필자가 행사를 진행한 곳은 못쓰게 된 폐CD를 이용하여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 지구에 편지를 쓰게 하는 체험부스였다. 고사리같이 여린 손가락으로 부모님과 함께 환경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또 편지를 쓰기도 하는 어린이들의 표정은 자못 의미심장하기까지 하였다. 자신의 이름만 가까스로 쓸 수 있을 정도의 나이 어린아이들은 그림을 그려주었다.
아이들은 지구에 무슨 말을 가장 하고 싶었을까? 행사가 끝난 후 아이들이 쓰거나 그려준 CD를 정리해 보았다. '지구야 미안해.'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쓴 문구였다. 어린이들은 왜 지구에 미안하다고 말하였을까?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이상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끝없이 소비하고 버리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지만,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어린이들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것이 자신의 탓 인양 지구에 그저 미안할 뿐인 것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맑은 냇가와 푸른 들판, 뛰놀던 뒷동산이 기억나지만, 현재의 어린이들에겐 그 무엇하나 제대로 된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추억이 없다. 사라져가는 숲들과 더러워진 강물, 죽어가는 동물들과 함께 그들의 건강마저 위협하는 이 시대의 환경들…. 모두가 어른들의 욕심으로 인해 그들이 성장해서도 가지고 갈 수 있는 푸른 추억의 조각 하나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지금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의 원인은 대부분 인간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먹이사슬의 최상위권에 있는 인간에게로 돌아오고 있다. 또한 이 비극의 원인이 불과 한 세대에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그 영향은 몇 세대에 걸쳐서 퍼지게 되어 있다. 누가 이토록 위험하고 불안한 환경을 그들에게 주었는가.
어린이가 가장 기뻐해야 할 하루임에도 그들에게 다시 한 번 환경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을 자신에게 물어보도록 해주는 일이 미래의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 어린이의 세대 또 그다음 세대에서도 지구에 미안한 마음보다는 고맙고 행복한 기억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의 할 일이며, 마찬가지로 미래의 어른이 될 어린이들에게도 또한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다. 이것은 모두 우리 어른들 자신이 만든 일이라는 것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어린이들의 글귀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지구야 미안해…. 어린이들아 정말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