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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의 그림이 있는 풍경 15] 길위에서-바람언덕 I
[이설의 그림이 있는 풍경 15] 길위에서-바람언덕 I
  • 편집부
  • 승인 2012.03.0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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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위에서-바람언덕 I /40×80cm / Acrylic on Canvas / 2011
바람언덕으로 가고 싶다.

바람이 불어오면 집을 나서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저 무작정 정처 없이 걷노라면 생각의 편린들 사이로 낀 먼지들이 하나씩 둘씩 바람과 함께 사라질 것만 같다.

겨울이 가려나 보다. 창밖으로 버쩍 마른 나뭇가지가 앙상하고 가지 끝마다 대롱대롱 달린 겨울의 나뭇잎들을 보고 있자니 서글픔이 밀려온다. 색이 바라고 수분을 잃어버린 그네들이 매서운 겨울 칼바람을 견뎌내는 것을 보면 웬지 모를 의연함까지 들기도 한다. 이제 곧 연둣빛 새싹들이 움트고 겨우내 나무를 지켜주던, 바람을 온몸으로 막아주던 그 잎사귀들은 땅 위로 내려앉을 테지. 그들의 마지막 사명을 다하기 위해 땅을 온몸으로 덮을 거야.

따뜻한 미풍이 불어오면 이 모든 겨울의 치열함 들은 뒤로 가고 사람들은 새로운 희망으로 들뜨겠지.

나 또한 그랬을까? 따뜻한 봄날의 바람언덕을 떠올렸을까? 풀들은 허리춤까지 올 정도로 자랐고 그 사이로 난 길로 나는 걸어가고 있었다.

봄의 한가운데 서 있는 바람언덕에서는 노랫소리가 들린다. 강약이 있는 리듬과 높낮이가 있는 선율이 느껴진다. 나는 마법사의 속삭임에 이끌리듯 바람이 안내하는 곳으로 길을 오른다. 풀, 바람, 길, 나, 물아일체.

가자. 바람언덕으로.